스토리 작품

3월의 중반을 넘기면서

bokkujjh   |   2026.06.18
작품명
3월의 중반을 넘기면서
작품 설명

3월의 화창한 봄 날씨가 성급하게 여름을 재촉하듯이 3월 하순으로 접어들어 가네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일기예보(기상청)에서 하였으나 비 소식은 없이 30도로 오르는 한여름 날씨네요 나는 해마다 3월이면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유난히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 떠올라 어서 빨리 3월이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인생 삶에 있어 각자 좋은 일 경사스러운 일 슬픈 마음 등. 여러가지 일들이 많겠지만 다들 3월이면 꽃봉우리 맺고 새싹이 터지는 춘삼월이 좋다고 하겠지만 나는 3월이 되면 왠지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렇다고 큰 병은 아니겠지만 만약 있다면 생각지도 떠 올리고져 하는 마음도 잊어야 할 것이 3월이면 내 머리를 어집럽게 하고 가슴이 터질 듯이 아픈 일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닌다. 

독자 여러분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을 것이겠지만 내 삶에 지울 수 없고 생각조차 하기도 싫은 것은, 지난 1993년 3월 29일(월요일) 지금으로부터 꼭 33년이 되네요. 그것은 바로 구포 열차전복 대참사 78명 사명 140여 명 중경상 대형 사고이지요. 그 당시 저는 부산 동서대학교에서 강사(환경공학) 1~2학년 강의를 하면서 통신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였습니다. 

본인은 사무실에 전화기 수리하고 있는데 밖엔 약간의 보슬비가 아스팔트를 흠뻑 적시고 대로엔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자동차 바퀴에 받힌 물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기도 하였지요. 그날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갑자기 소방차들이 급한 사이렌 소리가 계속 나고 또 소방차가 4대가 급하게 덕천동 방향으로 질주하고 또 이어 4대가 응급구급차도 3대 2대 계속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덕천동 방향으로 질주하기에 불이 많이났구나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가니 이제는 구급차 5~6대가 소방차 뒤를 이어 달리고 있기에 무슨 큰 사고가 났어? 그런 무척 궁금하여 인근에 있는 구포 파출소에 전화하니 열차 사고 났어요 만 하고 전화를 급하게 끊어버려서 여러가지로 궁금하여 나는 카메라를 매고 자전거를 타고(대학시절 동아리 사진부) 현장으로 달려갔지요. 매고 있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어떤 사고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에 덕천동 방향으로 갔지요. 인근에 가니 역길 옆에 소방차 2대만 있고 응급차는 보이지 않았어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사고 난 기찻길 위에 갔을 땐 응급차 3대가 더 왔고 나는 철길 위에 올라가 보니 영화에서나 보는 현장 처름 철길 위에 있어야 할 차량 3량은 폭격이라도 당한 듯 철길 밑으로 폭탄이라도 당한 듯 내려 앉아 있고 소방대원 여러 명과 무사히 나온 열차 승객들, 땅 밑으로 내려앉은 열차 2량은 땅속으로 곤두박질 되어 있고 열차 창밖으로 격차 안 손님들은 창문 밖으로 두손을 흔들면서 살려 달라는 비명의 목소리는 전쟁터였지요. 이곳 사고난 지역은 삼성물산이라는 회사가 구포변전소에서 덕천로타리까지 지중전력공사로 경부선열차선로 밑으로 지나가지 않으면 안될 사정 환경에 철도청 승인으로 공사를 하게되었다. 

그러나 본 필자는 그당시 삼성건설에서 공사를 해야할 위에 본 주택이 있었으며 삼성건설에서 지중공사를 하면서 부터 문제가 생겼다. 지중공사 지상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땅굴착에 진동과 소음 미세먼지등 피해를 입기 시작하였고 주민들은 고통에 행정관할 북구청에 민원진정을 제출하였으나 잠깐나와 둘러 본날에는 공사를 잠깐 중지하고 또 2,3일후엔 다시 공사로 주민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게하는 것이 수십번 반복되었으나 그때 주민들의 고통 무어라고 표현조차 힘더네요 동내 우물엔 물이나오지 않고 하여 우물을 가진 주인에게 보상은 커녕 공사마무리(준공)되면 우물을 다시 파주겠다고 약속을 한 사실의 대화를 주민과 공사소장이 대화 하는것을 본인은 들은 사실도 있으나 공사 끝무렵에는 배째라는 식으로 우물쭈물 공사를 하는 중에 적당히 하다가 큰사고의 원인이라고 생각들수 밖엔 없지요 좀더 세밀하게 안전검사를 위해 철도청 관할관청(북구청) 많은 관심으로 안전진단과 사고방지를 위해 더 세밀한 계획과 안전예방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렇게 큰 사고를 미리 예방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사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들어 갈수 없는 폭격받은 깊은 웅덩이였고 접근하려면 둘러서 갈 수 없는 곳이였다. 나는 승객들이 창빡으로 손을 흔들면서 비명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할 수 없는 위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애타는 마음뿐이었지요

겨우 정신을 차려 가지고 간 카메라로 샤트를 사정없이 누르면서 호송차(응급차)를 기다릴 수 밖에 없어서 너무나 안타깝고 평생에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순간들이었지요. 열차 사고는 그 당시에 제일 큰 사고로 78명이 사망하고 140여명이 중경상이라고 그 다음날 호회와 전국신문에 대자보로 보도되었지만 그 당시 최초로 열차 사고 인근에서 촬영한 것은 저 뿐이였고, 1시간 이상 지나서 각종 언론사 카메라 맨들이 몰려 왔으나 응급 환자 중환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고 승객들도 열차 안에서 다 빠져나온 상태였지요. 기자들도 많이 도착 되었지만 수습하고 시간이 흘러 사람들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촬영 했지만 열차가 폭격 맞은 듯 누워있는 현장엔 사람들은 사고 처리에 관련된 사람만 몇분 있을 뿐이고 내가 촹영해 놓은 사진은 승객이 내리는 모습과 많은 승객이 운집해 있는 사진 촬영은 나 혼자였지요. 각종 언론에서 자기 신문사 기사 사진을 요구했지만 저는 그 당시 부산일보 독자이고 부산일보 사진동우회 회원으로 부산일보사에 제공하기로 결정 했지요. 만 33년 된 지금에도 주택이 북구화명동 있기에 그 당시 사고난 자리를 지날 때(택시등)는 꼭 그날을 생각하면서 죽은 영혼을 위해 잠깐 묵념으로 고개를 숙여보면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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