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작품

서울 촌놈의 23년 부산일보 사랑

naver_7300841   |   2026.07.06
작품명
서울 촌놈의 23년 부산일보 사랑
작품 설명

나는 한때 한국기자협회와 네이버 카카오의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열성적인 지역언론 옹호론자였다. 그때 내 관심은 지역 언론, 그 중에서도 훌륭한 지역 신문의 콘텐츠를 한국인 모두가 더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설득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했다.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지, 부산일보와 매일신문, 강원일보 등 3개 지역언론을 필두로, 오늘날 많은 지역언론이 네이버와 카카오 포털에서 더 쉽게 독자와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 “서울 기자가 뭐 그렇게 지역 언론에 열광하느냐”는 말이 있었다. 그러면 안 되나? 서울 사람은 지역 신문 애독자 하면 안 되는가? “내용이 좋아서 꾸준히 읽었다” 해도 시각이 고착화돼 있는 일부 전문가에게는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왜, 언제 지역신문을 읽어봤느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가 지역언론, 그 중에서도 지역신문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20여년 전 군 복무 시절의 추억에서 시작한다. 추억이자 내 커리어를 시작하게 해준 귀한 찬스였다. 나는 2003~2005년 부산일보 바로 옆에 있는 동부경찰서에서 전투경찰로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취재 오는 기자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매일 오전 11시, 당시 석간이었던 부산일보 지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당시 부산일보의 대특종 기사가 1면에 나오면 경찰서 내부가 시끌시끌했고, 몇 시간 뒤에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군 생활 2년 동안 꼬박 1면 기사를 매일 읽고, 주말마다 일주일 치 부산일보 지면을 정독할 수 있던 것은 이후 언론인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기억에 남는 것은 독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부산일보식 소통이었다. 나중에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의 언론계 현업에서는 아직도 상당히 권위적이거나 독자들의 고견을 일각의 주장 정도로 치부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부산일보는 그렇지 않았다.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 주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이 지면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부산일보는 때로는 다소 패기 짙은 독자의 글도 과감히 실어주었다. 2005년 스쿨폴리스에 대한 내 글이 그렇다. 그 때 수정2동의 독자였던 나는 이런 문장으로 [500자 토크]에 실린 글을 마무리했다. “2005년이 학교폭력 박멸 원년으로 거듭나고 그 중심에 우리 부산이 있기를 기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2026년 메가 히트를 치고 있는 시점에 정말 순진한 발상이었지만, 적어도 부산일보는 20대 독자의 패기어린 의견을 웃어른의 잣대로 재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다. 지금 찾아보니 2004~2005년 내 글이 총 8번 실렸다. 2020년대 들어 부산일보는 ‘산복빨래방’ 등 지역 밀착형 대작 시리즈를 내놓았다. 높은 퀄리티는 놀라웠지만, 지역민과 진심으로 호흡한다는 그 정신 하나는 2000년대부터 지켜 본 그대로였다. 변하지 않았다.

 

부산일보는 언론에 무지했던 대학 휴학생이자 전투경찰이었던 내게 언론에 대한 관심과 소양, 열망을 키워주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 그리 어렵지 않게 기자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 보면 취미 삼아 2년 동안 부산일보를 정독하면서 얻은 기사 판단 능력 등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현역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저널리즘스쿨 학생 40명 가량을 지도할 기회도 있었는데(거의 다 유수 언론의 기자가 됐다), 이 때도 독자밀착형 피쳐 스토리를 쓰려면 부산일보를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일보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 같이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들 신문은 미 전역의 뉴스, 전 세계 뉴스 등을 깊고 넓게 다룬다. 하지만 본거지인 뉴욕 지역, DC 등 수도권 지역의 독자를 위한 커뮤니티 기반 메트로 기사의 가치도 잘 구현한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모바일 시대가 된 요즘, 오히려 부산일보의 전국지화에는 적기라는 발상의 전환도 독자로서 제안하고 싶다. 또 서일본신문 등 제휴지를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 거점 언론으로 영향력을 확장했으면 하는 기대도 한다. BTS 콘서트를 계기로 전세계 아미들이 부산에 모였는데, 부산일보 앞에서 굿즈를 주고 받는 행사를 할 수는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다시 예전 이야기로 돌아와서, 서울 기자가 왜 지역 신문에 열광하느냐는 당시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즐겨보던 지역신문들의 재미를 국내외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이다. 부산일보 독자 투고 외에도 타 지역신문에서도 객원기자로 활동했으니 빈 말은 아니라 할 자격이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내 확신의 시작은 부산일보였다.

 

AI시대다. 언어와 국경, 시차 같은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글로컬도 이제는 평범한 개념이 되었고, 이제는 부산다움, 부산일보다움이 경쟁력인 시대라 말하고 싶다. 20년 뒤 2046년, 부산일보의 100주년을 맞아 일본, 인도네시아, 에콰도르의 독자들과 함께 부산일보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언하고 싶은 내 포부는 너무 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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