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작품

부산일보와 함께 오른 지리산, 함께 걸어온 80년

dckim_7   |   2026.07.11
작품명
부산일보와 함께 오른 지리산, 함께 걸어온 80년
작품 설명

2026627일 새벽, 부산일보를 읽다가 창간 80주년 기념 독자 추억 공모전기사를 보았습니다.

 

부산일보가 1946년에 창간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문득 '부산일보가 올해 80살이면 나도 같은 1946년생, 개띠 동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스레 오래된 벗을 만난 듯 반갑고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부산일보와 함께했던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꺼내봅니다.

 

젊은 시절, 잦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부산일보만큼은 꼭 구독했습니다. 하루를 여는 첫 일과가 신문을 읽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무슨 신문이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활자 속에서 세상을 만나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이 저만의 소중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부산일보 독자란 '삼면경'에 실린 작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 여성 등산객이 지리산을 오르다 너무 힘들어 두 발이 모자라 네 발로 기어 정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짧은 기사 하나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보자!'

 

남편을 졸라 함께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그 당시 부산일보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등산과 낚시 안내가 실렸습니다. 그중 '자이언트 산악회'를 선택해 전화를 걸었고, 그 주 일요일 지리산행을 예약했습니다.

 

19861월 어느 일요일 아침, 변변한 등산화도 없이 낡은 운동화를 신고 간편한 옷차림에 주먹밥 하나씩 챙겨 시민회관 앞으로 향했습니다. 형형색색의 산악회 버스들이 시민회관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중 '자이언트 산악회' 버스를 보는 순간 설렘과 희열이 가슴 가득 밀려왔습니다.

 

중산리에서 시작한 산행은 생각보다 훨씬 험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눈 덮인 산길은 말없이 우리를 시험했습니다. 법계사 산장에서 점심을 먹는데 입도 얼고, 밥도 얼고, 땀방울마저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새 등산화를 신은 베테랑 산악인도 발이 아프다며 쉬고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겁도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두 발이 부족하면 네 발이 되고, 땀과 끈기, 그리고 의지 하나만 믿고 끝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영하 25도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야호!" 한마디를 외치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하산길이었습니다.

 

산악회에서 나눠준 아이젠은 한 켤레뿐이라 남편과 저는 한 발씩 나눠 신었습니다. 눈 아래에는 얼음이 숨어 있었고, 길은 낙엽과 먼지, 얼음이 층층이 쌓여 있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습니다. 낡은 운동화는 얼어붙은 제 발을 끝까지 감싸 안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버텨 주었습니다.

 

저는 하산이 더 자신 있어 앞장섰지만, 뒤에서 남편은 연신 미끄러졌습니다. 올라올 때 제가 뒤처져 애를 태웠던 일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중산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먹은 도토리묵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사발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매주 목요일이면 부산일보에 실린 산행 안내를 기다렸고, 신문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전국의 산을 오르며 행복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제 인생을 바꾼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일보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기사 한 편이었습니다. 그 짧은 기사는 저를 지리산으로 이끌었고, 지리산은 제게 끈기와 용기,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든이 된 지금도 새벽이면 가장 먼저 부산일보를 펼칩니다. 신문 지면에는 세상이 담겨 있지만, 제게는 삶의 소중한 추억도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은 하루가 지나면 새것으로 바뀌지만, 그날 읽은 한 줄의 감동은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합니다.

 

부산일보 창간 8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작은 용기와 새로운 추억을 선물하는 신문으로, 새로운 100년에도 부산 시민과 함께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