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명
- 부산일보는 공수갈매기의 증인
- 작품 설명
‘흔적이 있을까?’
1991년 나는 1976년 11월 부산 해운대 수영만의 차가운 바닷물을 떠올리며 공식 기록을 찾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생활하던 나는 오래된 신문을 찾아볼 수 있는 종로의 한 공공기관에 갔다. 한 면 한 면 새까만 필름 자료를 살펴보던 나는 부산일보의 1976년 11월 15일 자 기사를 찾았다.
하얀 먼지를 날리며 미끄러지듯 수영공항 활주로를 달려온 대대장 지프차가 브레이크 굉음을 내면서 멈췄다. 당시 우리 대원들은 낙하하는 대원들을 태운 비행기들이 접근할 안전한 방향을 유도하는 ‘항공기 유도 표지 작전’이라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15중대장 이 대위가 지프차에서 뛰어내리면서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비상, 비상임무 2명 차출이다!”
그는 헬기(UH-1H)에 탑승하여 ‘풍향 테스트’ 점프하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1976년 11월 15일. 50여 년 전 나는 ‘부산시 방어시범’ 훈련차 해운대 수영공항 활주로에서 D-day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것은 대략 국군의날 시범 훈련 중 ‘집단낙하’ 행사였다. 행사 시각에 맞추어 김해공항에서 C-123 수송기 4대에 100여 명의 공수부대원들이 이륙하여 부산 앞바다를 향해 비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본 행사 시작 전 최초, 최후 낙하지점을 파악하기 위한 ‘사전 풍향 테스트’는 다른 시간에 실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어찌 된 영문인지 긴급히 2명이 차출되어 사전 비상 점프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먼저 대장 지프차 앞에 뛰어나갔다. 뒤이어 강 하사가 따라 나왔다.
15중대장인 이 대위는 숨을 헐떡이면서 우리 2명에게 명령하였다.
“관제탑 앞에 대기 중인 헬기로 강하한다. 신속히 낙하산을 착용한 후 탑승, 해운대 바다 위 상공을 날아 수영공항 방향으로 비행한다. 최초 낙하 지점에서 강하사가 최후 낙하지점에서 황00를 점프시킨다.”
원래 나의 임무인 항공기 유도 표지 작전이 아닌 다른 비상 임무를 맡게 된 황당한 상황이었다.
내가 타게 될 헬기(UH-1H)는 이미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주로에 있었다. 긴급히 낙하산과 구명조끼를 착용한 후 최초 낙하자로 강하사가 먼저 탑승하고 최후 낙하자로 내가 탑승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자, 순식간에 해운대 바다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11월 중순의 바다 한가운데 상공의 바람은 매서웠다. 오늘날의 센텀시티 수영만을 향해 헬기가 돌아오면서 최초 낙하자 강하사가 먼저 ‘뛰어’ 소리와 함께 점프하였다. 나는 뒤이어 두 번째 관제탑이 보이는 활주로 상공에서 점프하였다. ‘쉬익’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펼쳐진 낙하산을 메고, 초겨울 추운 공중 바람의 기세에 따라 수영만 위를 한 마리 갈매기처럼 날았다. 잠시 낙하하는 동안인데, 강 하사를 바라보니 해운대 바다 가운데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뒤이어 수영만 바다에 풍덩! 풍덩! ‘공수갈매기’의 임무가 1차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출렁대는 바닷물 속에 맡겨진 나의 처지란 딱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하늘에 수없이 기도하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구명조끼에 달린 구명풍선을 펼치고 낙하산 줄이 수없이 엉킨 상태로 겨우겨우 버티며 위태롭고 안타까운 시간이 흐를 때, 저 멀리서 달려온 것은 특전대원의 수상구조대가 아닌 통통배였다. 그렇게 나는 구조되었다. 겨울 바다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부가 손 내민 고깃배 갑판 위에 올라 저체온으로 온몸을 덜덜덜 떨었다.
끝내 두 명의 ‘공수갈매기’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비상임무를 완수했다. 인근의 구경 나온 수많은 인파는 수영만 해운대 겨울 바닷물에 풍덩풍덩 뛰어내린 우리를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로 반겨주었다.
나와 강 하사의 사전 풍향 테스트 덕분에 수많은 공수부대원들은 안전하게 수영공항 활주로에 낙하하며 성공적으로 시범작전을 마쳤다. ‘안되면 되게 하라!’ 특전공수대원의 신조를 실행한 결과였다.
이후 부대원들과 복귀 후 나와 강 하사는 부대장 표창과 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때 나는 하마터면 23살 꽃다운 청춘의 나이에 산화되어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있었다.
이후 나는 1976년 11월 15일 자 부산일보에 실린 공식 기록을 볼 때마다 그때의 공포와 추위와 뿌듯함을 느낀다. 이것은 나의 병역의무이행을 증명해 주는 기록이다.
끝으로 2026년 6월 25일 자 부산일보에는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을 부산의 자긍심으로 만들자는 논설이 실렸다. 그 바다에 내가 낙하하여 대원들의 안전을 지켰다는 것에 한 번 더 자긍심을 느낀다.
<첨부자료 : 1976년 11월 15일 자 부산일보>
<기타 첨부자료 : 1976년 수영만 인근 등에서 찍은 사진>